[잡담] 바둑 하수인 팀장이 AI에 의존하는 신입 개발자를 보며...
팀에 새로 합류한 신입 개발자에게 업무를 맡겨봤습니다.
자신 있게 결과물을 가져왔지만 막상 내용을 살펴보니 아쉬운 부분이 많았습니다. 세부적으로 들여다볼수록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부분과 여러 허점이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결과물에 대해 몇 가지 질문도 해봤습니다.
- “XXX의 개념은 뭔가요?”
- “왜 이런 방식으로 구현했나요?”
- “이렇게 처리하면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까요?”
하지만 명확한 답변을 들을 수 없었습니다. AI가 만들어준 결과물을 충분히 이해하거나 검증하지 않은 채 그대로 가져왔기 때문입니다.

물론 신입 개발자에게 처음부터 완벽한 결과물을 기대하지는 않았습니다. 경험이 부족하다 보니 실수할 수도 있고 모르는 것도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AI를 활용해서 개발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우리가 만드는 소프트웨어는 실제 고객이 사용하는 서비스에 적용됩니다. 작은 실수 하나가 서비스 장애나 보안 문제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돈을 받고 일하는 프로입니다. 그렇기에 자신이 만든 결과물을 이해하고 검증할 책임이 있습니다.
1. AI 시대에도 중요한 기본기
AI가 코드를 대신 작성해 주는 시대가 되었지만, 개발자에게 기본기는 여전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AI를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서라도 기본기가 더욱 중요해진 것은 아닐까요?
요즘은 다양한 최신 기술을 직접 깊이 있게 학습하지 않더라도 AI의 도움을 받아 비교적 쉽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기술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과 그 기술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는 것은 다른 이야기입니다.
AI가 만들어준 결과물이 어떻게 동작하는지 이해하고, 요구사항에 적합한지 판단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상하지 못한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까지 검토하려면 결국 개발자 스스로 충분한 지식과 경험을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AI는 개발자가 코드를 작성하는 수고를 덜어줄 수 있지만, 그 코드가 올바른지 판단하는 책임까지 대신해 주지는 않습니다.
그렇다고 AI를 사용하지 말자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오히려 AI를 잘 활용한다면 혼자서는 오랜 시간이 걸릴 문제도 빠르게 해결할 수 있습니다.
다만 AI가 제시한 결과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과, 그 결과를 이해하고 검증한 뒤 활용하는 것은 분명히 구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2. 바둑 고수가 되고 싶어서 눈사태정석을 외우던 시절
한참 바둑의 재미에 빠져 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바둑을 잘 두고 싶은 마음에 실력에 맞지 않는 어려운 바둑책도 많이 구입했습니다.
특히 상대의 대응에 따라 수많은 변화가 발생하는 것으로 유명한 눈사태정석을 외우려고 노력했던 기억이 납니다. 실력을 뽐내고 싶었던 마음이 컸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막상 그렇게 어려운 정석을 외워도 실전에서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상대가 항상 제가 외운 정석대로 두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정석의 수순은 외웠지만 왜 그 자리에 돌을 두어야 하는지, 상대가 다른 곳에 두면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는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상대가 정석에서 벗어난 수를 두더라도 잘못된 수인지 판단하지 못했고, 응징하기는커녕 오히려 제가 손해를 보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정석을 외우는 데 집중한 나머지, 정작 바둑에서 중요한 수읽기 능력을 기르지 못했던 것입니다.
개발도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실제 운영 환경에는 예상하지 못한 여러 변수가 존재합니다. 기업마다 시스템 구조와 기술 환경이 다르고, 같은 기능이라도 서비스의 특성에 따라 고려해야 할 사항이 달라집니다.
AI가 만들어준 코드가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잘 동작하더라도, 우리 서비스의 운영 환경에서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결국 개발자에게 필요한 것은 AI가 만들어준 코드를 현재 시스템에 맞게 적용하는 능력뿐만 아니라, 예상하지 못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 스스로 원인을 분석하고 해결하는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바둑에서 상대가 정석을 벗어났을 때 다음 수를 읽을 수 있어야 하듯, 개발자도 AI가 만들어준 코드가 예상과 다르게 동작할 때 원인을 찾고 해결할 수 있어야 합니다.
3. 우리 팀 신입 개발자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
돌이켜보면 눈사태정석을 외우던 당시의 저도 바둑 고수가 되는 지름길을 찾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수읽기라는 기본기를 건너뛴 채 정석만 외운다고 바둑 실력이 늘지는 않았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바둑 하수인 것을 보면 말입니다.
AI 덕분에 개발은 과거보다 훨씬 편리해졌습니다. 하지만 편리해진 만큼 기본기를 소홀히 하기 쉬운 환경이 된 것도 사실인 것 같습니다.
적어도 우리 팀의 신입 개발자만큼은 제가 바둑을 배울 때 했던 실수를 반복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AI 시대에 더 중요해진 것은 코드를 빠르게 만들어내는 능력만이 아니라, 그 결과를 이해하고 검증하며 끝까지 책임질 수 있는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AI가 만들어준 코드를 잘 사용하는 개발자를 넘어, AI가 틀렸을 때 그 이유를 알아낼 수 있는 개발자로 성장했으면 합니다.